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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다디단 이유

하루 한 편, 시

by 함기대 2024. 2. 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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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겨울잠 좀 자지 그래?

 

 

회복기

 

                                                                         정끝별

 

 

    아침 햇살이 슈거파우더처럼 내려앉은 이월의

소파에서 그루밍하다 사르르 잠이 든 고양이

 

 

   조금 전에 나는 저 소파에 기대앉아 신열에 젖은 속옷을 식히며

남산타워 뒤로 떠오르는 해를 맞았어

   열이 내렸을까 겨드랑이를 파고든 고양이가

가르릉가르릉 불러주는골골송을

선잠인 듯 듣다 일어나 고양이 물을 갈아주고

화장실을 치우고 밥을 주고는

     수란을 띄운 말간 순두부를 끓여 늦은 아침을 먹는 내내

계란을 좋아하는 고양이가 무심한 척 내 무릎에 앉아 있었는데

조그만 심장이 어찌나 쿵쿵거리던지

      설거지를 하고 다시 식탁에 앉아 연한 커피를 마시면서

슈거 파우더 뭉치가 된 소파의 고양이를 보고 있어

 

 

   이제 봄이겠구나

   어느 봄 햇살에 나도 녹아들겠구나

 

   봄이 다디단 이유일거야

 

 

 

 

 

정끝별

평론가이자 이화여대 국문학과 교수이자 시인

1988년 시 '칼레의 바다'로 데뷔

'회복기'는 2023년 펴낸 시집 '모래는 뭐래'에 수록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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