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보온밥통이 없던 시절
뜨끈한 아랫목은 밥이 담긴 스테인리스 밥그릇의 차지였습니다.
어둑한 백열전구 불빛 아래서
홀로 외로움을 견뎌야 했던 아이.
싸늘한 윗목의 기억은
그래서 더 간절함과 따스함으로 엄마를 기억하게 하고
언제나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차근히 기억을 꺼내보며 한 해를 정리해 봅니다.
쓸쓸함과 그리움이 동반된 애틋한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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