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봄산에서는
나를 버릴 수 있으리
솔이파리들이 가만히 이 세상에 내리고
상수리나무 묵은 잎은 저만큼 지네
봄이 오는 이 숲에서는
지난날들을 가만히 내려놓아도 좋으리
그러면 지나온 날들처럼
남은 생도 벅차리
봄이 오는 이 솔숲에서
무엇을 내 손에 쥐고
무엇을 내 마음 가장자리에 잡아두리
솔숲 끝으로 해맑은 햇살이 찾아오고
박새들은 솔가지에서 솔가지로 가벼이 내리네
삶의 근심과 고단함에서 돌아와
거니는 숲이여 거기 이는 바람이여
찬 서리 내린 실가지 끝에서
눈뜨리
눈을 뜨리
그대는 저 수많은
새 잎사귀들처럼 푸르른 눈을 뜨리
그대 생의 이 고요한 솔숲에서
김용택
1948년, 전라북도 임실 출생.
순창농고를 졸업하고 교사 시험을 거쳐
스물한 살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썼습니다.
1977년 소월시문학상 수상
1986년 김수영문학상
1997년 소월시문학상
2002년 소충, 사선문학상, 윤동주 문학대상
김용택 시인은 시가 대중과 더 친숙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가 내게로 왔다>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등을 엮어 내기도 했는데요.
<어쩌면...>은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가 읽은 시집으로 유명합니다.
또한,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는데요.
이창동 감독 작품 <시>에서 여주인공에게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순수한 시의 세계로도 사랑받는 시인이지만,
그래서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는 시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2. 작품 세계 및 작품
김용택 시인은 섬진강 연작 시를 선보여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렇듯 자연과 아이들을 글로 옮기며 그 순수하고도 깊이 있는 마음의 옹달샘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시인이죠.
또한 아이들의 작품을 문학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연이 들려주는 말을 받아쓰니 시가 되더라.'라고 말하는 김용택 시인이
한 강연에서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나무는 정면이 없습니다. 바라보는 쪽이 정면입니다.
그리고 나무는 경계가 없습니다.
땅과 물을 교환하고 하나의 생태계를 이룹니다.
자신에게 오는 것을 받아들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합니다.
정면, 정답만 있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정답이 하나밖에 없으면 답답합니다.
바라보는 쪽이 정면이라는 생각, 경계를 지우는 일이 중요합니다...
(중략)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받아들일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받아들이는 힘을 키우는 것, 바로 인문의 힘입니다.
3. 감상
누구든 잠깐이라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동굴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시인에게는 자연이요, 솔숲이 그런 곳인가 봅니다.
그곳에서 묵은 과거의 회한과 시름은 져서 떨어져 내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삶의 거름이 되고,
우리 삶은 사계절 내내 푸른 솔잎처럼
싱싱하고 향기롭게 살아날 것입니다.
고된 삶의 현장에서 한발자국 물러나 찾은 솔숲에는
봄이 깃들고 있습니다.
아직 찬 서리가 연약한 실가지 끝에 내리는 것처럼
우리 삶에서 찬기가 가시지 않았을지라도,
봄기운이 서리를 녹여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박새처럼
가벼운 솔가지에 가볍게 내리는 하루를 맞이할 수 있을 거예요.
김용택 시인의 어머니께서 자주 하셨던 말씀이,
"살다 보니 별 일이 다 있다.""살다 보면 뭔 수가 난다." 였다고 하는데요.
우리 삶도 '별 일이 다' 있지만 '살다보면 뭔 수가' 나겠지요?
정말 별 일이 생길 땐 나만의 솔숲으로 가봐야겠어요.
여러분의 솔숲은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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