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켄 리우
중국계 작가. 1976년 중국에서 태어나 11세에 미국으로 이민,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뒤 프로그래머를 거쳐,
하버드 대학 법학 전문 대학원을 나와 다시 변호사로 일하는 등
다채로운 이력을 자랑한다.
지금도 낮에는 기술 전문 컨설턴트로 일하며 밤에는 글을 쓴다고 알려져 있다.
서른 개의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은 뒤 겨우 세상에 나온 단편 모음집이자,
켄 리우를 SF 및 판타지 문학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휴고상과 네뷸러상
그리고 세계환상문학상을 모두 수상한 최초의 작가로 만든 책이다.
종이 동물원은 단편 소설 모으므로
잘 알려진 얘기도 있고 넷플릭스의 독특한 시리즈
'러브, 데드 그리고 로봇' 시리즈 중 한 편으로 제작된 이야기도 있다.
역사를 좋아하는 작가의 지식을 기반으로 쓰인 작품들,
프로그래머로서의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쏘아 올린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내용
줄거리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울고 있는 내 모습에서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단편 종이 동물원은 간단히 말하자면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다.
중국에서 태어나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엄마는,
울고 있는 아들을 위해 모아 놓은 종이 포장지로 동물을 만들어 준다.
신기하게도 엄마가 접어 숨을 불어넣어준 동물들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으르렁 거리며 집안을 뛰어다니지만 애교만점 호랑이 라오후를 시작으로,
염소와 사슴, 물소 그리고 상어까지.
상황의 변화는 이사와 함께 시작된다.
새로 이사한 이웃을 보러 온 동네 여자들은 주인공 잭의 엄마가
영어를 못한다는 말에 마음 놓고 영어로 수다를 떤다.
"섞여서 좋을 게 뭐가 있다고. 이 집 애 좀 봐.
되다 만 것처럼 생겼잖아. 눈은 쭉 째졌는데 얼굴은 하얘. 조그만 괴물 같아."
어린 잭은 이후 엄마에게 영어로 대화할 것을 강요하고
영어가 서툰 엄마와
이방인으로서 미국 사회 일원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잭의 사이는
점점 멀어져만 간다.
아들에게 닿고 싶은 엄마와
엄마를 외면하는 아들.
엄마의 마음이 깃든 종이 동물들이
어두컴컴한 박스를 박차고 나와 다시 뛰어다닐 날이 올까.
감상
"내가 사랑-love라고 말할 때, 난 그 말을 여기서 느껴요"
엄마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켰다.
"하지만 아이라고 말하면, 여기서 느껴요."
엄마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아빠는 고개를 저었다.
"여긴 미국이야."
이삿집을 찾았던 두 여인들처럼,
잭의 아빠처럼
강요하는 건, 단정 짓는 건 이해하는 것보다 쉽다.
쉬운 선택은 지금은 편하지만 언제나
상처와 후회 투성이 관계로 남는다.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것은,
그 존재에 덕지덕지 붙은 수식어를
존중하는 것이 아님을 생각해 본다.
중요한 것을 잃기 전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기 전에
존재 자체를 바라볼 수 있기를.
즐거운 사냥을 하길
줄거리
대를 이어 요괴 사냥꾼으로 살아온 집안의 아들 '량'은
아버지와 함께 젊은 남자를 유혹하는 구미호-후리징을 사냥하러 나선다.
후리징은 상처를 입은 채 쫓기다 버려진 절터에 이르지만
뒤를 쫓은 량의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곳에서 량은 후리징의 딸과 만나게 된다.
후리징이 사악한 요력을 얻기 위해 젊은 남자들을 홀려
정기를 빨아먹는다고 배워왔던 량은,
후리징의 딸 '염'에 의해 요괴에 대한 선입견이 깨지고
염과 우정을 쌓는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대두되면서
요력과 마법의 시대가 사라지는 세월의 변화 속에
둘은 헤어지게 된다.
살기 위해 홍콩으로 이주한 량은
기계에 매력을 느껴 엔지니어로 살아가던 어느 날,
영국 사령관 아들의 정부로 지내는 염과 마주치게 된다.
갑작스레 량을 찾아온 염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기계를 사랑하는 성도착증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 영국 사령관 아들은
염의 몸을 하나하나 기계로 바꿔나갔던 것.
염은 차라리 완전한 기계가 되어 자유를 누리길 소망한다.
엔지니어인 량이 만들어낸 염의 몸.
그것은 완전한 기계 여우였다.
홍콩의 밤.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크롬색 은빛 여우의 울부짖음.
Good Hunting!
감상
매혹적이다,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작품이다.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것들을
우리는 쉽게 버리지만,
어느 순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되찾기를 원하고 그리워하곤 한다.
기계가 줄 수 없는 '감성'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잃으면 인간은 인간일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염도 량도 사라지는 과거를 뒤로 한 채 걷고 있는 듯하지만,
그들은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변함없는 자신의 가치를 붙잡는다.
블레이드 러너가 생각나는 어두운 분위기 같고
기계적인 세상의 비릿한 쇠맛이 느껴질 것 같지만
심장을 뜨겁게 달구는 작품이다.
세상은 변해도 '나'라는 존재 자체는
'나'로 존재할 때 빛이 난다.
다른 작품들
일방적인, 생명을 돌아보지 않는 사상(思想)이 불러온 참극.
우리나라에서 자행된 각종 민간학살 사건들이 떠오르는 '파자점술사'
감정을 조절하는 레귤레이터를 달고 있는 형사 출신 탐정 루스가 살인자를
추척하며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가는 '레귤러'
'레귤러'는 애써 감정과 상처를 외면하지만 그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진정한 극복과 치유는 결국 대면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레귤러처럼 독특한 설정들로 가득한 '종이 동물원'의 마지막 편은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로,
731부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뵘기리노 입자를 이용해 시간 여행이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역사를 증명하겠다는 중국계 미국인 에번 웨이 박사와 일본계 미국인 기리노 박사 부부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다.
시간 여행을 통해 중국 핑팡 지역의 731부대 참상을 목격한 부부와
희생자 후손의 증언들이 이어지지만,
정치적 이유로 이를 은폐하려는 자들과
자신과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기에 지난 과거로 치부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들이 교차하면서
결국 시간 여행은 금지되고 웨이 박사는 세상을 떠난다.
"우리는 말 못 하는 이들을 위해서 보고, 말해야 합니다.
바로잡을 기회는 오직 한 번 뿐입니다."
14편의 단편에는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다양한 역사적 배경과 문제들을 다루는 작품들이 들어있다.
짧은 이야기 속에 묵직한 주제를 담아내
절절하고 먹먹한 마음을 갖게 하는 작품들이
560쪽에 가득 들어 기다리고 있다.
책을 펼치기만 한다면
랴오후처럼 으르렁 거리며 생동감 있게 뛰어들 것이다.
당신과 나, 우리는 서로 다르고,
우리가 지닌 의식의 특질도 우주 양 끝의 두 별만큼이나 서로 다르다.
그럼에도, 내 사유가 문명의 미로를 지나 당신의 정신에 닿는 기나긴 여정에서 번역을 거치며
아무리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해도,
나는 당신이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리라 믿고,
당신은 당신이 나를 진정으로 이해한다고 믿는다.
우리 정신은 어떻게든 서로에게 닿는다.
비록 짧고 불완전할지라도.
사유는 우주를 조금 더 친절하게, 좀 더 발게, 좀 더 따뜻하고 인간적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그런 기적을 바라며 산다.
-켄 리우 '종이 동물원' 머리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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