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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나요?

하루 한 편, 시

by 함기대 2024. 3. 18.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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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하얀 민들레 곁에 냉이꽃

냉이꽃 곁에 제비꽃

제비꽃 곁에 산새콩

산새콩 곁에 꽃다지

꽃다지 곁에 바람꽃

 

 

소년 하나 언덕에 엎드려 시를 쓰네

 

 

천지사방 꽃향기 가득해라

걷다가 시 쓰고

걷다가 밤이 오고

밤은 무지개를 보지 못해

아침과 비를 보내는 것인데

 

 

무지개 뜬 초원의 간이역

이슬 밭에 엎드려 한 노인이 시를 쓰네

 

 

 

1. 시인

 

곽재구

 

1954년 전라남도 광주 출생

1981년 시 <사평역에서>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2001년~2021년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2. 작품 세계 및 작품

 

몸 안에 팔만 육천사백 편의 쓰다 만 시가 있다는 곽재구 시인.

8만 6400초는 하루의 시간을 초단위로 계산한 수치입니다.

시와 동반자로 살아가는 게 시인의 삶이라지만,

호박꽃을 보고 찾아온 시를 쓰기 위해 

비상깜빡이를 켜놓고 시를 쓰는 시인의 모습, 상상이 가시나요?

네, 시인의 그런 모습들을 다양한 시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곽재구 시인은 화려한 미사여구와 치장은 홀딱 벗은 시어를 구사하는 시인입니다.

자연을, 인물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시어들을 건져 올리는 능력이 탁월한데요.

자연을 노래하는 서정시와 인물들의 사연을 시로 옮긴 인물시

그리고 힘겨운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인간 본래의 순수성과 회복을 추구하는 시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삶이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

시의 정의는 내가 좋아하는 순간을 내 방식으로 써 내려가는 것

그런데 (써내려갈 때) 좋아하니까 좀 아름답고, 신비하고, 따뜻하게 쓰는 것

이게 내 시의 정의에요.

-광주일보 인터뷰 중

 

시집 <사평역에서><전장포 아리랑>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 외 다수

산문집 <곽재구의 포구 기행><곽재구의 예술기행><시간의 뺨에 떨어진 눈물> 등

시 선집 <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별밭에서 지상의 시를 읽다>

동시집 <공부 못했지?>

동화집 <아기 참새 찌꾸><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짜장면> 등

 

3. 감상

 

시가 내 삶의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걸었던 지난 시절들 생각을 한다.

내면과의 격렬한 싸움이 있었으므로 그 시절은 아름답다.

 

곽재구 시인의 고백이 고스란히 시로 옮겨진 게 아닐까 싶은 시가 <세월>입니다.

 

언덕에 엎드려 시를 쓰던 소년은

이슬 밭에 엎드려 시를 쓰는 노인이 되었네요.

하지만 세월이 어떻게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가는 곳마다 시를 건네는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오기 때문이죠.

 

하얀 민들레 곁에 냉이꽃, 냉이꽃 곁에 제비꽃...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시인은 시간이 가는지

세월이 흐르는지 모릅니다.

걷다가 시를 쓰는 것처럼

그의 인생은 온통 시를 쓰기 위한 시간이며,

소년이든 노인이든 시를 쓰는 자신은 변함이 없으니까요.

 

우리 속에는 각자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잠재돼 있다고 합니다.

지금 당장 알지 못해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탐색할 때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요?

심장을 뛰게 하는 일...

생애 어느 때에라도 만나기만 한다면

시인이 노래하는 천지사방 꽃향기 가득한 세상에서

이슬이 내린 축축한 밭이라도 상관없이 엎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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