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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도쿄기담집

뒷BOOK

by 함기대 2023. 6. 9.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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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더워진다. 슬슬 으스스한 이야기가 끌리는 때가 도래하고 있다.

그렇다고 선택한 건 아니다. 

예전에 한 번 쓱 읽었던 것을 다시 꺼냈다.

괴담이 아니라 기담이다. 기이한, 그러면서 어디선가 있을 법한 다섯 편의 이야기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화자가 되어 자신이 들은 이야기,라고 단서를 붙이는 바람에

실제 들은 이야기들처럼 느껴진다.

 

1. 우연한 여행자

 

-우연에 이끌린 체험에 대한 이야기.

 

-줄거리

 

게이인 독신남인 는 말쑥하며 예의 바른 인물로 한 때 피아니스트를 꿈꿨지만 조율사로 진로를 바꾼 현재의 삶에 비교적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매주 화요일마다 가는 쇼핑몰의 카페에서 좋아하는 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을 읽고 있는 그에게 한 여자가 다가오며 루틴이 확실한 그의 일상에 잔잔한 파문이 인다.

여자와 그는 <황폐한 집>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매개로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여자는 그를 보며 어쩌면 사라졌다 생각했을지 모를 오랜만의 설렘을 품게 되고, 여자의 귓가에 있는 점을 보며 그는 그와 비슷한 점을 가진 누나를 떠올린다.

여자에게서 누나를 발견한 그는, 누나에게 안부 전화를 건다.

전화를 계기로 거의 10년 만에 누나를 만난 그는, 누나에게 10년 전의 자신과 연락을 끊게 된 이유를 담담히 전하고, 누나는 유방암 수술을 앞둔 자신의 상황을 전한다.

이를 통해 두 사람은 관계를 회복 한다.

유방암 재검사를 앞둔 누나처럼 귓가에 점이 있는 여인과의 만남.

이것이 우연일까? 마음 깊은 곳에서 누나와 화해하고 싶었던 간절함이 불러온 기이한 사건일까. 조율사는 이렇게 얘기한다.

 

우연의 일치라는 건 어쩌면 사실 매우 흔해 빠진 현상이 아닐까...

그런 종류의 일은 우리 주위에서 끊임없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태반은 우리의 눈에 띄는 일 없이 그대로 지나쳐 버립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강하게 구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언젠가는 꼭 우리 앞에, 하나의 메시지로 떠올라오는 것입니다.

 

2. 하나레이만

 

-두 번째 이야기는 하와이에서 상어의 습격으로 아들을 잃은

도쿄의 싱글맘 피아니스트 사치의 이야기를 담은 하나레이 만이다.

영화로도 제작됐다.

 

 

-줄거리

 

아들을 잃은 후 매년 가을이면 아들이 머문 마지막 장소 하와이 하나레이만에서 체류한다.

어느 해, 다리 하나를 잃은 채 숨진 아들은 어딘가 나사가 빠진 것 같은 두 명의 서퍼 앞에 외다리 유령의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사치에게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얘 도대체 뭣 때문이야? 이건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담담히 아들의 죽음을 정리하고 받아들이던 사치는 통곡하고 만다.

나에게는 그만 한 자격이 없는 걸까?’ 하고 자책도 하지만 결론을 내린다.

 

‘그녀가 아는 건 어찌 되었든 간에 자신이 이 섬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

 

아들을 잃었다고 달라진 것 없이 사치의 삶은 계속된다.

그녀는 모든 사실을 받아들였다. 자격이 있다, 없다를 논할 수 없는 일이다.

자책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아들의 유령이 실제 한다 하더라도 그가 어디서 언제 나타나는 건 오로지 그에게 달려 있으니까.

과거에 매이지 않고 슬픔에 잠식되지 않고 여전히 자신이 운영하는 피아노바에서 피아노를 연주한다.

그렇다고 잊지도 않는다.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것에 대해 생각한다.... 하나레이 만.

 

3. 어디에서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

 

-기묘한 의뢰를 받는 '나'가 고급 멘션의 24층과 26층 사이에서 사라진 남자를 찾는 이야기

 

-줄거리 

 

시아버지의 죽음 이후 시어머니와 한 아파트에서 살게 된 여인이 사라진 남편을 찾아 달라며 에게 의뢰를 한다.

증권회사에 다니는 남편과 여인은 상당히 세련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명품으로 휘감고 골프를 치고 다만 불안신경증이 점점 심해지는 시어머니의 시도 때도 없는 호출에 응해야 하는 것이

그들 부부의 유일한 '불편'이라고 할까.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요일 오전의 평온을 깨운 시어머니의 전화.

남편은 24층에 있는 어머니 집으로 갔다가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금방 올라갈 테니 일요일 아침마다 먹는 펜케이크를 준비해 놓으라고.

그렇게 전화한 남편은 24층에서 부부의 집이 있는 26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어딘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말 그대로 증발.

여인의 의뢰를 받아들인 는 남편이 사라진 24층에서 26층으로 오르는 계단에 매일 출근하며 흔적을 찾는다.

 

층계참 휴게실 쇼파에 앉아 는 고층에 살지만 계단을 고집하고 증권회사에 다니며 일요일 아침마다 펜케이크를 먹고 골프를 치러 다니는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25분이 어딘가로 소멸해 버렸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군. 효용이 없는 마모.

전혀 나쁘지 않은 일이다.

 

층계참에서 그는 운동 삼아 계단을 뛰어오르는 런닝맨,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계단을 이용하는 여자아이, 아들 내외와 살면서 밖으로 나가 움직이는 시간을 얻기 위해 담배를 피우는 할아버지를 만난다.

그가 찾는 것은 의뢰인의 남편일까, 아니면 그가 여자아이에게 얘기했듯 우산이든 문이든 도넛이든 보면 그것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는 것일까.

 

어쨌든 의 시간이 흘러가는 사이 남편을 찾았다며 여인이 연락을 해온다.

지하철역 벤치에서 발견된 남편은 20일간의 기억과 10kg의 몸무게를 상실한 채 돌아온다.

 

“현실 세계에 무사히 잘 돌아오셨습니다. 불안 신경증의 어머님과 아이스 피크 같은 하이힐을 신은 부인과 메릴린치로 에워싸인 아름다운 삼각형의 세계로!”

 

나는 다시 어딘가 다른 장소에서, 문인지, 우산인지, 도넛인지, 코끼리인지 모를 형태를 지닌 것을 찾아 헤매게 될 것이다.

어디든 간에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

 

결혼 전 몸무게 보다 10kg가 늘었던 남편은 20일 사이에 기억과 몸무게를 모두 잃었다. 20일 분의 기억이 소멸

남편과 는 쓸모와 효용, 의무로 정의되는 를 벗어버리고 존재로서의 를 오롯이 찾고 싶었던 것일까.

해리포터 속 93/4 승강장이 그곳을 알고 찾는 사람들에게 호그와트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것처럼,

26층과 24층 사이 층계잠은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현실과 분절된 미지의 공간일지 모른다.

누구나 찾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동굴 같은 곳.

 

4. 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처럼 생긴 돌

 

-'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처럼 생긴 돌'에 대한 단편을 쓰는 소설가 준페이와 '키리에'라는 여인과 만남에 대한 이야기.

 

-줄거리

 

작가인 준페이는 어릴 적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진정 의미 있는 여인을 잊을 수 없어 여인을 만날 때마다 가늠하게 된다.

진정 의미 있는 여인은 일생에 딱 세 번 주어진다고 횟수도 한정돼 있어 매우 신중하다.

그런 준페이 앞에 키리에라는 여인이 나타나는데, 준페이에게 키리에는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이보세요, 준페이 씨. 이 세계의 모든 것은 의지를 갖고 있어....

모든 게 다 그래. 돌도 그중 하나인 거야. 그것들은 우리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어느 때가 되면 우리는 그걸 깨닫게 되지. 우리는 그런 것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어. 그것들을 받아들여야 우리는 살아남고, 그리고 깊이를 더해가게 되는 거야.”

 

5. 시나가와 원숭이

 

-자신의 이름만을 기억하지 못하는 여인의 이야기.

 

-줄거리

 
평범하지 그지 없는 학창시절,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결혼생활.
못생기진 않았지만 예쁘다는 칭찬은 듣지 못하는 사람.
그것이 미즈키의 인생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생활에 문제가 생긴 건 일년 전.
자신의 이름을 잊게 되면서다.
 
외제 자동차 판매장에서 일하는 미즈키는 누구보다 차에 대해 잘 알고
찾아오는 고객을 설득해 일을 성사시키는데 일조하며 딜러로서의 소질도 충분하다.
이런 기억들은 전혀 잊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이름만을 잊는 것이다.
 
어느 날 구청에 들렀다가 마음 상담소를 발견하고
자신의 문제를 상담사에게 털어놓기 시작하는데...
미즈키가 잃어버린 것은 이름일까, 아니면 더 중요한 무언가일까.
 
-다 읽고 나니 조율사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어째야 좋을 지 모를 땐 언제나 어떤 룰에 따르려고 해요.
형태가 있는 것과 형태가 없는 것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
형태가 없는 것을 골라라
 
형태가 있는 삶을 살아가지만 형태가 없는 중요한 무언가를 마주하고
그것이 건네는 진실을 대면하며 결국 받아들여야만 진정한 삶을 다시 이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 아니었을까. 
여전히 다 이해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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